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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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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멈춰선 클래식, ‘평생교육’에서 해법 찾다 2021.06.09 20:22

[인터뷰] 세종문화회관에서 일반인 대상 성악 클래스 이끄는 소프라노 김은경


6월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 중후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발의 남성이 무대에 서서 그랜드피아노 반주에 맞춰 열창하는 중이었다. 윤기 있는 바리톤 음색으로 가곡 《내 맘의 강물》을 멋들어지게 부르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곳은 성악 공연장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 부설 세종예술아카데미가 진행하는 성인 대상 성악 클래스 ‘히든 보이스’ 수업 현장이다. 

2013년부터 히든 보이스 수업을 이끌어온 소프라노 김은경(명지대 객원교수)은 국내 최정상급 성악가다. 반면 수강생 30여 명은 대부분 음악 비(非)전공자다. ‘음치 탈출’을 위해 문을 두드린 사람도 있다. 히든 보이스에서 나이와 직업은 중요치 않다. 심지어 왼쪽 가슴에 붙이는 이름표에도 정식 이름이 아닌 닉네임을 써넣는다. 부담이나 편견 없이 오직 노래로만 ‘힐링’하자는 수업 모토에 따라서다.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정오~오후 1시) 동안 수강생들은 ‘보첼리’ ‘빈체로’ ‘율리아’ 등으로 변신해 자신의 목소리와 만난다.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부캐(부캐릭터)’가 된 것을 잊고 우물쭈물하면 여지없이 선생님의 애정 어린 호통이 돌아온다. 김 교수는 “노래를 잘하는 비결은 다른 게 없다. 부끄러움을 버리면 된다”며 수강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와서 노래해 보실 분?”이라고 묻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김 교수가 한 사람을 지목해 무대에 세웠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수강생들에게 김 교수는 웃으며 “어차피 다 나와서 해야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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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클래식 평생교육’ 수업은 문전성시 

3개월여간의 수업 중 수강생들은 자리에 앉아 노래를 배우다가도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서너 번씩 무대 경험을 한다. 마지막 수업 땐 ‘종강 콘서트’가 펼쳐질 예정이다. 고등학생 시절 가창 시험을 치른 후 처음 서는 무대라면 다리부터 후들후들 떨린다. 박자를 놓치고 음이탈이 발생하기도 다반사. 실수를 연발하던 수강생이 곡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시뻘게진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가려 했다. 필기하며 노래를 듣던 김 교수가 수강생을 붙잡았다. 소리 내는 법, 자세 등을 알려 주고는 “다시 해 볼게요”라고 말했다. 코칭받은 수강생이 몰라보게 발전하자 곳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변화를 경험한 수강생은 다음 수업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소리가 잘 안 나요” “고음이 힘들어요”라며 소극적으로 앉아 있던 수강생들의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변해 간다. 급기야 손을 번쩍 들고 무대로 나가는 이도 생긴다. 김 교수는 수강생들의 발전 속도에 맞춰 세세하게 지도하고 과제를 부여한다. 강의 중간중간 직접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세종문화회관 직원이 조명을 조절해 진짜 공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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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보이스’ 수업 장면ⓒ시사저널 오종탁

“수강생들이 ‘평생 관객’ 될 것” 


이렇게 수강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히든 보이스의 재수강률은 60~70%에 이른다.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좌석 간 거리 두기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이행하며 수업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마스터 클래스’를 신설했다. 히든 보이스 수강생 가운데 6명을 따로 모집해 진행하는 심화 강좌다. 마스터 클래스 모집도 히든 보이스처럼 금세 마감됐다. 히든 보이스와 마스터 클래스를 연달아 이끌고 숨을 돌리는 김 교수를 만나봤다. 

유명 성악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12주짜리 강의를 진행하는 데 한 번, 수강생들의 열정이 뜨거운 데 또 한 번 놀랐다. 


“2013년 세종문화회관이 히든 보이스 강의를 의뢰해 흔쾌히 응했다. ‘수강생들이 성악을 배우는 것을 넘어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수업을 기획·진행했다. 당시 나도 밖에서는 대학 강의와 콘서트 출연으로 바쁘고, 집에선 한창 엄마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지낼 때였다. 정말 힘들었다. 수강생들도 마찬가지일 듯했다. 히든 보이스를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업과 삶의 무게 등을 잠시 잊고 자신의 호흡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그 시간을 즐기는 거다. 아울러 모르는 것은 막 물어보고 무대에서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더니 8년째 롱런하는 인기 수업이 됐다.” 

올해 심화 과정인 마스터 클래스도 신설했는데. 

“히든 보이스를 여러 번 수강해 오면서 (기존 강의에서 배우는 것보다) 좀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심화 과정에 대한 니즈(needs·욕구)가 커져 이번에 마스터 클래스 개설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클래식 공연 등 대면 문화활동이 많이 위축된 가운데서도 히든 보이스는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 



“주변의 클래식 아티스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90% 이상이 코로나19 여파로 너무 한가하다. 나 역시 성악가로서 굉장히 불안한 게 사실이다. 클래식 저변이 좁고 대학 교육도 위축되어가는 와중에 맞은 코로나19라 더욱 안타깝다. 우리나라에 좋은 성악가나 기악 연주자가 아주 많은데, 정작 그들의 공연을 봐줄 관객이 없다.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서다. 음악대학 학생 수도 체감상 과거 대비 30% 이상 줄어들었다. 반면 히든 보이스 같은 평생교육 클래스는 올해까지 매년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평생교육이 클래식의 위기를 타개할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시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는 음대보다 세종예술아카데미 같은 평생교육 기관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수강료까지 합리적으로 책정한 세종예술아카데미는 클래식 평생교육의 좋은 본보기다. 히든 보이스 수강생들처럼 클래식을 배우고 진심으로 즐기는 시민들은 ‘평생 관객’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한 클래식 교육과 공연 저변 확대가 전공자들의 생계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야말로 선순환이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을까. 

“이탈리아에 가보니 동네 주민들끼리 모여 오페라 합창을 매일같이 배우고 연습하고 있더라. 그러다 전문 연주자들이 오페라 공연을 앞두고 합창을 해줄 일반인들을 모집하면 바로 그 ‘동네 합창단’이 손들고 참여한다. 프로 성악가들로 구성된 기존 합창단에 아마추어 합창단이 추가로 합류하는 식이다. 무대가 훨씬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동네 주민들은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실제 공연에서 선보일 수 있게 되니, 만족감이 어마어마하다. 이후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공연도 적극적으로 관람하며 클래식 열성 팬이 된다. 이런 평생교육의 힘이 우리나라에서도 발현되면 좋겠다.” 

현재 김 교수는 명지대 미래교육원 시니어센터에서도 성악 클래스 ‘오페라 싱어’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는 40대 이상 성인을 위한 맞춤형 평생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올해 신설됐다. 오페라 싱어도 히든 보이스 못지않게 큰 인기를 끄는 중이다. 김 교수는 “평생교육 기관이 점점 더 늘어나고 체계화돼 클래식 관객 양성과 시장 형성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소프라노 김은경은…
김은경 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시합창단원 선발을 계기로 음악과 가까워졌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음악 전공생의 길 대신 학업을 택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내가 가장 행복해지려면 음악을 해야겠다’며 음악대학 진학을 결심한다. 김 교수는 10개월여 동안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음악적 기초가 부족했던 탓에 신입생 때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김 교수는 “조금 창피했지만 예중·예고를 졸업한 동기들에게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며 핸디캡을 극복해갔다”면서 “그래서 성악을 배우는 비전공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웃었다.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해 결국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 로시니 국립음악원 유학을 계기로 더욱 발전했다. 로시니 국립음악원 합창단 솔리스트를 시작으로 국내외 콘서트, 오페라 등 다양한 무대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KBS 신인음악제 입상, 이탈리아 페스카라 국제콩쿠르 우승 등 수상 경력도 많다. 2008년에는 ‘인생 역전 스토리’로 유명한 영국 테너 폴 포츠와, 2009년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블라디미르 체르노프와 협연했다. 아울러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The Letter’(한국 가곡) ‘아름다운 시절’(세계 민요) 등 2장의 음반을 냈다. 2009부터 2019년까지 백석예술대 교수를 역임한 김 교수는 올해 명지대로 자리를 옮겨 기존 후학 양성에 더해 평생교육에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음악 봉사 단체 ‘마노아마노’ 대표는 김 교수의 부캐다. 뜻을 함께한 동료 음악가들과 2013년부터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 연주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나눠 왔다. 그는 “마노아마노 활동을 통해 문화 격차 해소는 물론 클래식 관객 양성의 가능성도 봤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공연을 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 피아노를 기부하거나 성악 레슨을 진행하는 등 클래식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더욱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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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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